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신체 손해사정사'로서 8년 동안
일하며 경험했던 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일을 시작할 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 채 시작하여 많이 방황했던 것 같아요..
저의 이야기가 신체 손해사정사를
꿈꾸시는 분들이나,
어떤 직업인지 궁금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번 Ep.1에서는 먼저 신체 손해사정사가 된
저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작성해 보려고 합니다.
보건관리학 졸업
저는 4년제 대학 '보건관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보건관리학과에 들어가게 된 것은 오롯이 수능 성적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가고 싶었던 곳은 화학과나 화학공학과였지만 성적이 부족했고 재수를 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20살이 되던 해 어영부영 보건관리학과를 선택하지만 그것도 턱걸이로 겨우 들어간 거라 감사한 마음으로 입학했던 기억이 납니다. 보건관리학과에서는 주로 병원에서 일하는 '의무기록사'를 양성하고 고학년 방학 때 연계된 병원에서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저도 당시 한 병원에서 약 2주 정도 의무기록사로 실습하였는데,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달라 의무기록사가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어느 날 졸업한 선배 중 보험회사의 손해사정직무에서 일하는 선배의 강의가 열렸고 역동적이면서도 전문성이 느껴지는 손해사정직무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일하면서 느꼈던 건 역동적=미친 듯이 바쁘다, 전문성=약관&지침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계속 공부+교육^^) 그때부터 보험회사에 입사하는 걸 목표로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한 보험회사에 4학년 2학기 중 합격하여 23살에 회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입사해서 보니 보건관련학과나 보험학과가 많기는 하지만 관련이 아예 없는 전공을 한 친구들도 많았어요. 예를 들면 체육과라던지 역사과.. 등등.. 손해사정 직무에 관심만 있다면 본인의 전공은 크게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입사 후 첫 회사 생활
회사에 입사하니 약 한 달간의 연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보험학과를 나오거나 입사 전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딴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저를 포함) 보험의 보자도 모르는 신입사원이 가득했습니다. 회사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교육장에 들어와 다양한 주제로 교육을 했습니다. 보험 약관이 연도마다 변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래서 같은 치료라도 어떤 분은 보상을 받고 어떤 분은 보상을 못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연도마다 변경된 약관을 숙지하는 게 가장 기본이기 때문에 시험도 보고 예시도 풀면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또 고객을 응대하는 것도 손해사정직의 주요 업무 중 하나라 친절히 응대하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교육 기간이 끝나면 실무에 투입됩니다. 멘토 선배가 한 명씩 옆에 배치되고 혼돈의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머릿속에 여러 약관이 뒤엉켜서 계산하는 것도 복잡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전산까지 숙지하려니 더 난장판입니다. 처음에는 수습 기간이라고 하여 월급의 70%만 받으면서 하루에 배당을 2~3건 정도만 받습니다. 정말 적게 받는 건데도 '교육할 때가 행복했다'라는 생각을 하며.. 약관을 보며 겨우겨우 계산을 해도 회사 전산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옆에 멘토 선배의 도움이 필요한데... 멘토 선배는 고객과 전화하랴 밀려드는 배당을 치랴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제가 고객이랑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전화가 걸려 오면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집니다. 특히 벌벌 떨면서 첫 통화를 할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을 했는지..
하루에 2건을 겨우 처리하고 동기들과 탈탈 털린 멘탈을 붙잡고 퇴근길에 술을 마시러 갑니다. '업무가 힘들면 회사 분위기가 좋고, 업무가 쉬우면 회사 분위기가 안 좋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손해사정직무는 무조건 전자에 해당합니다. 팀장급 이상에서는 가끔 이상한 사람이 있지만 동기와 선후배랑은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동기들과 술을 마시러 가서는 오늘 자신이 했었던 보상이야기만 가득 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다 보니 의지할 곳이 동기들밖엔 없었던 것 같아요.
출근해서 보상하고 퇴근해서 동기들과 술 마시고.. 가끔 회식하고..의 생활이 반복되며 차츰 손해사정 직무에 익숙해져갑니다. 처음에 2~3건 받던 배당도 20% 50% 80%.. 차츰 늘리더니 어느새 100%를 받으며 선배들과 동일선상에 섰습니다. 그러면서 야근도 확 늘었습니다. 일주일에 2~3일은 보통 8시까지 야근을 했고 월 말이나 연말 같은 마감날에는 일주일 내내 11시까지 야근을 했던 날도 많습니다. (야근 수당은 없었습니다.)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건지 회사가 나를 다니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고 결이 맞지 않는 팀장과 부장을 만나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첫 회사에서 1년 좀 넘게 일을 하다가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손해사정 직무에서의 이직
첫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했고 성공했습니다. 이 업계는 월 말이나 연말이 아니라면 휴가를 쓰는 게 자유로워서 면접도 아주 잘 봤습니다. 회사에서 고객이랑 통화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띠링 와서 보니까 이직을 준비한 회사의 합격 소식이었습니다. 바로 팀장님께 달려가서 퇴사를 말씀드렸고, 아직도 기억나는 게 팀장님께서 '##회사 아니면 보내줄 수 없어'라고 하셨는데 제가 ##회사에 합격한 거라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는 첫 회사를 12월 31일에 퇴사하고 바로 1월 1일에 이직한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제 커리어에 틈이 생기는 게 싫었고 쉬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틈 없이 퇴사했어요. 월 말+연말이 겹치는 제일 바쁘고도 바쁜 12월 31일에 퇴사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그렇게 급했었나 싶어요.. 제20대는 여유가 정말 없었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아요.)
사실 1년 경력은 경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두 번째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지원했었던 거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새로운 회사의 버스를 타고 연수원으로 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여기도 약 한 달간의 교육을 받았는데 전 회사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아서 적응을 쉽게 했습니다. 교육 내용은 전 회사와 비슷했어요. 다양한 약관 내용 숙지, 고객 응대 방법, 동기들과 친목 도모 등.. 이 기간에 동기들과 많이 친해져서 이후 힘든 보상 생활을 견디는데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또 멘토 선배 옆에 앉아 수습 기간을 보냈습니다. 배당이 차츰 늘어갔고 야근과 술을 마시는 횟수도 늘어갔습니다. 첫 회사와 비슷한 흐름이었지만 훨씬 좋았어요. 부장, 팀장, 선배, 동기, 후배가 모두 좋았고 회사 분위기가 부드러웠으며 월급도 더 많고 복지도 좋았습니다. 덕분에 여기서 7년 정도의 세월을 보냈네요.
신체 손해사정사 자격증 취득
회사를 다니면서 제 커리어를 더 올릴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가장 제격인 것 같았어요. 저는 인보험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체 손해사정사' 취득을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손해사정사 자격증은 1차와 2차를 모두 합격해야 하며 1차는 객관식으로 난이도가 쉬우나 2차는 모두 주관식으로 난이도가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1차의 경우 회사에 일찍 출근해서 업무 시작하기 전까지 하루에 30분~1시간씩 한 달 정도 공부하여 쉽게 합격했습니다. 문제는 2차였는데 공부하면서도 '이걸 합격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직장과 병행하려니 시간은 없는데 마음은 조급하고 난이도는 어렵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3개월 동안 공부했고 주말엔 아침부터 밤까지 독서실에만 있었으며 평일에도 퇴근하고 잘 때까지 공부했습니다. 회사에서 시험 전 2주간 연수원을 보내주는데 이 기간을 잘 활용했던 게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공부하는 사람들만 다 같이 연수원에 있다 보니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어 집중이 더 잘 됐습니다. 또 업무를 안 하니까 시간이 확실히 여유로워서 과목들을 여러 번 돌릴 수 있었고 답안지 작성도 많이 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신 똑같이 공부 못하겠다'라고 생각하며 지독하게 공부했더니 준비한 기간에 바로 2차를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취득하실 예정이라면 회사에 입사 전에 따시는 것보단 입사 후 따시는 게 더 이득인 것 같습니다. 보험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손해사정사 취득을 강요하진 않지만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해사정사 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하면 강의와 교재도 지원해 주고 연수원에도 유급으로 보내줍니다. 또 자격증을 최종 취득하게 되면 포상휴가, 축하금, 월급에 자격증 비용이 회사별로 10만원~20만원 플러스 되어 나옵니다. 하지만 입사 전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취득하신다면 이 중 월급+만 받으실 수 있습니다. 대신 입사 후 자격증 공부하실 때 주의하실 건 지원을 다 받았는데 합격 못하면 약간의 눈치가 보인다는 점..이 있습니다.
번아웃, 퇴사 결심
처음에 이직할 때 손해사정 직무는 저와 맞지만 회사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직을 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사실 처음에 보건관리학과에 입학할 때부터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그나마의 최선을 찾고 있었던 거라 한계에 도달해 버렸습니다. 전혀 흥미가 없는 일을 버티려고 하다가 번아웃에 온 것 같았어요. 모든 게 무기력해지고 열정이란 열정은 다 없어지고 삶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많은 업무량과 고객과의 감정싸움에 저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다가 30대가 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50대, 은퇴까지 하는 건가?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볼 기회는 있었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나타났습니다. 29살 때부터 차츰 생각은 들었지만 안정적인 월급과 생활에 퇴사할 용기가 없어 애써 모른척했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더 나은 걸 찾아보려고 했고 자격증도 취득하고 노력했는데 애초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 전제이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계속 무기력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오래 했고 2년간의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퇴사할 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정확히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들었던 동료들과 떠나는 게 슬펐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퇴사'라는 용기를 낸 스스로를 토닥이며 정리된 짐을 들고 나오는데 후련했어요.
이번 글에서는 제 일대기를 어느 정도 작성했고..
다음 글부터는 손해사정 직무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 어디로 취업할 수 있는지, 제가 느낀 장단점 등을 쭉 써 볼 생각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그래도 손해사정 직무에 관심이 있거나 취업을 생각하고 있으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번 글에서 드리고 싶은 말은..
저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손해사정 직무에 발을 들였지만
- 내가 손해사정 직무를 정말 원해서 하고 싶은 것인지?
- 현재 상황에 나를 끼워 맞춰서 취업을 하려는 건 아닌지?
한 번 꼭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손해사정 직무는 단단한 결심 없이는 헤쳐나가기 힘든 직무입니다.
본인이 흥미가 없는데 취업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탈이 나더라고요.
저 스스로도 경험했고 회사에 있으면서 한계를 느끼시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8년 동안 손해사정 직무를 하며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간 시간만큼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한 번쯤 꼭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다음 주제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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